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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란?

비선과 실세를 따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비선이란 말은 대통령과 비밀리에 줄이 닿아있는 관계인 사람이나 조직을 의미합니다.

실세란 실제세력이나 실제 세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데, 실권을 가진사람. 즉 실질적인 권리나 권세를 가진 사람(실권자)와도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같은 일이 있었나요?

역사적인 대표적 사건으로는 신라, 고려, 조선 3가지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진성여왕 - 위홍

우리 역사상 여성이 왕이 된 인물은 3명이 있습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선덕여왕은 최초의 여왕이었고 그 뒤를 이은 인물인 진덕여왕. 마지막은 진성여왕입니다.

진성여왕은 음란하고 정치를 잘못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멸망의 원흉으로도 비판받기도 한 인물로 기억 하실겁니다.

이런 진성여왕을 등에 업은 위홍(진성여왕의 숙부)에게 진성여왕이 정사를 맡겼고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해 정사를 어지럽혔다고 합니다. 위홍이 죽은 뒤 실의에 빠진 진성여왕은 문란한 행실과 실질적으로 국가 재정을 위태롭게 하고 민심을 동요시켰으며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실정에 대한 책임으로 왕위에서 물러났죠.


고려 공민왕 - 신돈

공민왕은 개혁군주이며, 로맨티스트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원간섭기 고려 왕들의 이름에는 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나 유일하게 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은 왕이며, 고려를 원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고 왕권강화, 권문세족 숙청, 영토 회복 등을 한 왕이였기 때문에 개혁군주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또한, 노국대장공주(노국공주)와의 사랑. 원 간섭기에는 몽골의 공주들의 힘이 매우 강했으며, 고려 왕의 정책에 반대를 하는 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었습니다. 허나, 노국대장공주는 고려에 시집을 온 다른 공주들과는 다르게 남편 공민왕의 정책을 지지하는 등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특히 원나라 출신 왕후로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 노국공주는 원나라 출신인데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행해 맘이 편하지는 않았겠으나, 고려 왕에게 시집왔으니 고려인이라며 고려의 왕후로 행동하기도 했죠. 또한, 공민왕에게 있어서 그녀는 권력 유지 수단이 아닌 정치적 동반자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며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의 행적에서 나타납니다. 그녀가 죽자 개혁의 의지가 사그라졌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흥미를 잃은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공주가 살아있었을 때 순조롭게 왕권을 강화하고 성공적인 개혁이 추진되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 그토록 바라던 아리를 노국공자가 임신하였다가 난산으로 사망한 것이 공민왕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정략적인 결혼으로 만났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많이 사랑하고 존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원의 간섭기에 다른 몽골인 왕후들처럼 원나라 황족의 지위를 이용해 위세를 부리고 정치에 참견하고 남편을 아래에 두고 굴복시킬 수 있었겠지만 다른 왕과 왕후들과 다르게 서로를 존중함으로서 역사에 기록되어 알려질 수 잇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민왕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 포부 등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인물로서.... 


이로 인해 슬픔이 지나쳤으며 모든 의욕을 잃은 공민왕은 그녀를 추모하는 불사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나타나며, 신돈을 등용하게 되죠.(다시 비선실세내용으로 돌아가서...) 

신돈에게 젼폭적인 신뢰와 권력을  주어 개혁정책을 실행하게 하고 자신은 공주를 추모하기 위한 불사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공민왕과 허물없는 친구처럼 행동하며 안하무인격 행동이 계속되었습니다. 신돈은 왕권강화책인 사심관제를 부활시키고 사심관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면서 공민왕과의 사이가 멀어져 반역자로 몰려 참살당했습니다.


아마, 노국공주와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 고종 때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은 진령군.

진령군이라는 말을 들으면 남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 이유는 군(君)이라는 작위가 왕자급의 작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위를 무당이 받아 진령군이 된 것입니다. 진령군은 무당이었으며 명성황후는 진령군을 수호 신령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군민들이 명성황후를 죽이기 위해 창덕궁 돈화문에 난입하자 명성황후는 친척집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신분을 숨긴 채 살던 무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명성황후는 무녀에게 매료되었습니다. 진령군은 구체적인 날짜까지 말하며 환궁할 수 있을 거라 말해주기도 하고 청나라 군대에 도움을 받아 진령군의 말한 날에 환궁을 했으며 환궁을 하자 마자 무당이었던 그녀를 진령군으로 봉한 것입니다. 진령군은 정치적 문제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건달 출신을 아들로 삼아 고관대작 시키는 등 국정 농단을 일삼았으며 대형 굿판을 여러 차례 벌여 국고를 탕진하기도 했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 되자 얼마 뒤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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